입생로랑 르브르 커리어우먼의 향기
올 해는 비 구경을 질리게 해서 그런지 비 오는 날이 지겹기만 합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열이 나는 것 같고 으슬으슬 추운 것 같고 기분 또한 다운되어 하루의 시간이 더디게만 갑니다. 일도 손에 잡히질 않고 집중이 안되고 있습니다. 발포비타민을 하나 상큼하게 먹고 나니 문득 거울 앞에 진열해 둔 입생로랑 르브르 향수가 눈에 띄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 변덕스럽게 울다 웃다를 반복하는 날씨를 탓하며 울적한 기분을 차분하게 진정시켜줄 만한 향수이기에 시선이 갔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어느날, 지인이 취업한 친구에게 향수 선물을 하고 싶다며 어떤 향수를 선물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저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래저래 어려운 시기에 취업성공을 한 지인의 친구가 너무 대견하고 기특하여 함께 진지하게 향수를 고르던 날이 문득 생각납니다. 남들에게 표현 못하고 초조함을 누르고 꿋꿋하게 노력한 그분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고, 마음 다해 축하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고민에 고민을 더해 함께 고른 향수가 입생 로랑 르브르 오 드 퍼퓸입니다. 입생로랑 르브르는 사랑스러운 꽃향기를 담고 있으면서 관능적이고 성숙한 느낌의 향기를 가졌습니다. 향수를 고르던 그때도, 비가 추척추적 내렸고 쌀쌀한 공기가 감도는 날씨였는데 크게 특별할 것이 없던 기억도 이렇게 추억이 되었나 봅니다. 날씨 하나에 시선 하나에 지난날의 상황과 나누던 대화들이 생각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입생로랑 르브르는 향수 보틀부터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는 향수입니다. 인테리어 소품이나 사진 소품으로도 자주 등장하기도 합니다. 저도 향수를 보통 유리장 안에 일렬로 진열시켜 놓는 편인데, 르브르 만큼은 화장대 거울 앞 한편에 놓아두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예쁘고 고급스럽다는 이유로. 볼 때마다 괜히 뿌듯하게 느껴지고,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이면 오늘 코디 콘셉트가 입생로랑과 함께할 콘셉트인가 돌아보게 되는 힘을 가졌습니다. 우아한 분위기를 내면서 심플한 멋이 있습니다.
탑노트: 탠저린, 네롤리, 라벤더
미들노트: 오렌지 블로썸, 재스민
베이스 노트: 화이트 머스크, 통카빈, 바닐라
입생로랑 르브르 향수는 쌀쌀한 날씨와 굉장히 조화가 잘 되는 향수입니다. 청순하고 얌전한 스타일보다는 우아한 꽃향을 담은, 밝으면서도 중성적 느낌의 분위기를 가져서 향수를 뿌린 사람을 강단 있는 사람 또는 파워풀하고 소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듯합니다. 밝고 웃음이 많은 성격이지만 결코 만만한 이미지는 아닌, 또는 일이 많던 적던 맡은 바 임무를 실수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는 업무능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탄탄한 경력을 쌓아가는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그리게 합니다.
입생로랑 르브르와 함께한 화요일
향수를 구매할 당시, 저는 시댁의 방 한 칸에 살림을 꾸려 신랑과 두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울감도 있었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이 겹쳐 식구들의 배려로 친정에 아이들과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아마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계절이었을 겁니다. 하늘도 예뻤던 맑고 선선한 기온의 어느 날 기분전환을 위해 엄마와 아이들과 같이 나들이 겸 백화점으로 아이쇼핑을 갔었습니다. 평일이라 그런 지 제법 한산했던 그날 백화점은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 딱 좋았던 것 같습니다.
평소 립스틱이라도 가져보고 싶다 했던 입생로랑 브랜드에 발길이 멈추었던 저는 외출도 몇 번 못할 거면서 붉은빛의 립스틱 한 개를 고른 후 슬쩍 향수가 있는 쪽으로 향했습니다. 두 번째 순서로 시향 했던 게 르브르 였는데 그 향이 너무 좋아 엄마랑 저는 한참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날의 날씨와 계절 기분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향기였습니다. 우울함을 떨쳐버리고자 무작정 나와 향했던 백화점 향수 코너에서 그저 향기만으로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향수를 만났습니다. 큰 지출을 감수해야 했지만 상쾌하게 정화되었던 그 기분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우울한 감정이 들 때면 몸에 두르는 향수 중 하나로,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을 겪고 난 뒤엔 꼭 함께합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경험을 토대로 추천하기도 합니다.
고급스러우면서 향긋함으로 기분까지 전환시켜주는 소소한 행복을 주는 아이템으로서 탄탄하게 자리하고 있는 입생로랑 르브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차례가 되었을 때 잘 어울리는 향수로 선물이나 데일리 향수로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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